영화 '파과'로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 웰메이드 액션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강렬한 액션과 감성의 훌륭한 조합이면서도 나이 듦의 외로움을 그려내었다.

민규동 감독은 이혜영과 함께한 '파과'의 액션에 대해 이야기했다. 검술, 맨몸, 와이어 액션까지, 젊은 배우들도 소화하기 어려운 신들을 60대 배우 이혜영이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스턴트 비율이 아주 높지는 않았습니다. 못할 건 안 시키겠다는 원칙은 있었지만, 최대한 본인이 직접 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를 했어요. 처음부터 무감정한 롱테이크 위주로, 이혜영 배우를 중심에 놓고 영화를 만들자는 데서 출발했죠. 단순히 액션을 위한 액션이 아니라, 감정이 이유가 되는 액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민 감독은 액션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립했다. "합을 외우기보다, 기본기를 다진 자세에서 연륜이 만든 순발력으로 가자고 했어요. 조각(이혜영)은 차가운 물처럼, 투우(김성철)는 뜨거운 불처럼 개념을 설정했죠. 그래서 두 사람이 대립했을 때 물과 불이 충돌하는 구조가 됩니다. 30대 남자와 60대 여자의 싸움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를 질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는 감정이 빈틈을 만든다고 봤어요. 30대의 뜨거운 불 같은 투우는 감정이 앞서고, 60대의 조각은 마지막 한 수를 노리는 카운터의 대결, 죽기 직전까지 몰리는 설계를 통해 극적인 설득력을 끌어올렸습니다."
민 감독은 원작 소설의 액션이 현실적으로 구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가능한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실제로는 더 화려한 액션을 설계할 수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선을 넘으면 오히려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서커스를 보듯,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할 수 있는 액션'을 추구했습니다."
이혜영은 촬영 중 부상을 입기도 했다.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갈비뼈를 다친 것이다. "숨을 갑자기 못 쉬시는 상황이 있었어요. 근데 그날 보조출연자도 200여명 있었고 그 장소에서도 촬영 시간이 아주 타이트해서 '계속 하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설득드렸고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해내셨습니다. 아마 그때가 배우에게는 저를 향한 원망의 정점이었을 거예요. 그런데도 본인이 고통을 택한 건, 만들어지지 않는게 더 큰 고통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민 감독은 처음에 이혜영 배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액션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했던 걸로 알려졌다. "액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이혜영 배우가 걷는 장면만으로도 액션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와호장룡'을 예로 들며 설득했죠. 본인이 겁을 조금씩 내려놓고, 육체적 고행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더 나아가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한 번 더 해보죠' '그만 할수 없어요. 계속 해여 돼요' '우리 조금만 더 넘어가 보죠' 라고 말씀드렸죠"라며 이혜영을 이끌고 액션 장르를 해낸 비결을 밝혔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민규동 감독의 화법은 부드러우면서도 설득력이 있었고 심지어 스윗하기도 했다. 뛰어난 언변의 민규동 감독이 옆에서 조근조근 설득하고 설명하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혜영 배우를 이렇게 어려운 도전을 하게끔 이끌어 낸 비법이 뭐냐고 물으니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이라고 얼굴에 꽃받침을 해 보여 폭소를 안겼다. "귀엽고 어렵고 까다로운 배우들을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예산도 부족했고, 스태프도 경험 많은 인력이 아니어서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저는 슬프지 않았어요. 이혜영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건 제 선택이었고, 고통스러웠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이혜영 배우에게도 '즐겨주세요'라고 부탁했죠."
민규동 감독은 "감독이라는 직업은 끝없이 미움받는 존재로서 사랑받는 숙명은 변하지 않더라고요. 항상 의심 속에서 작업합니다. 혼자 설계한 대로 가는 게 아니라, 화학적 결합의 결과가 영화로 나오는 거니까요. 미지의 안개를 뚫고 보물섬을 찾기 위해 항해하는 배 처럼 가는 거죠."라며 매번 힘든 작업이지만 반복해서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감독은 "연극이나 공연처럼 했던 걸 지금 다시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다른 새로움을 새 배우와 함께 시작하면 결국 또 똑같이 고통스러울 걸 알죠. 새로움에는 늘 고통이 따르니까요. 내가 큰 만큼 장애물도 커지고, 욕망도 커지고, 관객의 눈도 높아졌고,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하는 작업은 예전과 똑같이 한계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오랜 시간 작업을 하는데도 매번 작업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말을 했다.
베를린에서 상영된 '파과'와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나란히 공개됐던 순간도 회상했다. "이혜영 배우가 '우리 영화가 '미키 17'보다 재밌다'고 한 건 진심이었던 것 같아요. 본인의 자아가 영화에 담겼기 때문에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죠. 봉 감독님도 베를린에서 함께 시사회를 보셨고, 한국 돌아와서 바로 '파과'를 보러 오셨어요. 이혜영 배우의 농담을 봉감독은 충분히 이해하실거라 생각해요. 저는 베를린에서 제 영화가 같이 상영한 것도 부담이 컸는데, '미키 17'이 먼저 상영되고 우리가 뒤였거든요. 부러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뿌듯했죠."
그는 봉준호 감독의 반응도 전했다. "'기생충'의 현준이가 이렇게 컸냐며 놀라워하시더라고요. 영화에선 짧게 나오지만, 저는 그 아이가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한 모성애로 읽히지 않게 하려고, 또래보다 좀 더 크고, 세상을 파괴하면서도 구원하는 존재처럼 보였으면 했고, 그래서 캐스팅했어요. 봉 감독님도 뿌듯해하시더라고요."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로, 4월 30일 개봉한다.
iMBC 김경희 | 사진출처 NEW, 수필름